“라벤더 정원을 걸어본 적 있소?”
Mildred Maxily|밀드레드 맥실리
나이: 40세
성별: 여성
키, 몸무게: 167cm | 마름
외관
재단의 연회 사이에서도 테라스의 난간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앳되지 못한 낯에 시간이 서렸기에 필히 후원자리라 미루어 짐작하곤 했다. 제 손을 겹쳐 반지의 흔적이 남은 약지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면, 오 년 전에 제 남편을 잃은 밀드레드일 게 분명했다.
짝을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모양인가. 수군거림에도 가만히 다문 입, 녹빛 눈 아래로는 장신구 하나 하지 않고 새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카라를 세워 있는 단추는 모두 잠근 블라우스 위로는 녹색의 드레스를 입었는데, 허리를 두꺼운 자주색 벨벳 리본으로 묶어 차분하고 고아했다. 제 단정한 옷차림을 바로잡기 위한 것인 듯, 모난 부분 없이 단단히 틀어올린 검은 머리는 풀어내리면 굽이칠 듯 보였다.
그 음울한 형상에 섣불리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밀드레드는 그저 공허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었다. 조용히 아래로 내리깔아 그림자가 진 속눈썹 아래 보이는 눈동자는 짙고 또렷했다. 메마른 피부는 점 하나 없이 말끔한 채라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입술은 다 시들어가는 장밋빛을 닮아 겨울이면 파랗게 질린 것처럼 보였는데도.
선선히 시선을 맞추는 눈길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고립되길 택한 것이다. 꼿꼿하게 펴진 후원자, 어디에도 갈 곳 없이 고인 호수. 친우를 만나면 옅게 걸리는 미소 하며, 진중히 건네는 조언까지 사람을 멀리하는 성격은 아님에도 완곡한 거절이 보였다.
그래서 밀드레드를 아는 사람은 말했다.
그가 ‘데키마 재단’에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거라고.
맥실리는 가끔 그 실언을 곱씹었다.
성격
고요한
오 년 전에 그의 남편이 죽었다더라. 그 이후로 데본 부인은 유령이 되었다지. 차갑게 내려앉은 안색하며 오래 비가 내리지 않은 흙 같았다. 반듯하게 자라 가지를 뻗을 새 없이 잘라낸 목석만 같은 모습으로 누구의 앞에도 나서지 않는데, 그의 검소한 옷차림이 한결 보태주었다. 그는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었고, 공상했으며,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던한
오래도록 칩거했어도 사람과 마주하는 조명 아래에서는 안색이 밝아졌다. 사교에는 관심이 없어도 예법은 몸에 배어 있었고, 타인의 말에 크게 반대하지도 않고 긍정하는 법으로 모든 일을 넘겼기 때문이다. 적당히 긍정하고 칭찬하는 것이 그의 성정이었으나, 다만 단 한 가지 나무라는 것은 저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때였다.
예의 바른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허락을 구하지 않는 한 존대했다. 자본가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인지 행동거지에는 기품이 있을지언정 과시욕은 없었다. 묵묵히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딘가로 떠나버릴 것 같은 유령 같으면서도, 제자리에 우묵하게 선 맥실리 그대로였다.
기타사항
✳ 데본
오 년 전 이름은 밀드레드 데본.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거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게 된 건, 그의 남편인 엘리엇 데본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엘리엇은 밀드레드와 세 살 차이로 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전에도 부유한 도련님이었는데 서점에서 시집을 읽는 밀드레드에게 단번에 반했다. 그 이후로 밀드레드에게 끊임없이 구혼한 엘리엇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하자 청혼을 받아들였다.
무역선의 풍랑으로 성을 잃었지만 데본 가의 자산은 여전히 밀드레드에게 남겨져 있다. 그의 남편은 조선업을 시작으로 여러 무역업체와 결탁하여 사업을 넓혔고, 지금까지도 그 회사는 남아 부를 축적하고 있다. 다만 밀드레드는 경영에 손을 대지 않고 자신과 엘리엇의 친우에게 권리를 위임했다. 운이 좋게도 정직한 맥실리의 친구는 밀드레드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남겨두었다.
✳ 양장점
어릴 적부터 스스로 옷을 수선하고 신발을 고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엘리엇의 지원으로 관련된 기술을 배웠었다. 양장점을 열었었는데, 엘리엇이 죽은 이래로 유럽 여행을 빌미삼아 문만 닫고 내버려두었다. 지금이야 발끝까지 덮는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가장 행복한 건 자신이 연 가게에 오는 손님과 이야기하며 치수를 재는 일이었다. 지금의 말수 적은 밀드레드와 어울리지 않는 만큼 가끔 돌이켜보며 미미하게 웃었다.
✳ 그림
그림을 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는 남편과 사별하고서 유럽을 떠돌면서도 계속되었다. 데본의 선박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을 몇 번 흥미롭게 보던 것이 시야가 넓어져, 지금은 어느 정도 가치를 읽어낼 줄 알게 되었다. 가볍게 예술품을 감정하고 가품과 진품을 구분하는 것도 밀드레드의 숨겨진 취미. 다른 사람 앞에서 말했다간 거래를 그르칠 수 있어 속으로만 감춘 지 오래되었다.
✳ 담배를 피운다. 술은 조금. 다른 사람 앞에서는 흡연하지 않고 음주하는 일은 적다.
✳ 옷감을 만지던 일을 했던 만큼 손 곳곳에 굳은살이 배겨 있다.
✳ 슬하에 자식은 없다. 평소에는 넓은 집에서 홀로 지낸다.
✳ 문학을 꺼리지 않는다. 교양은 충분하다.
본 재단을 통해 누군가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어렵지 않은 이야기요. 나는 그를 잃고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내 곁에서 지지해준 친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재산만 갖고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소. 주변에 남은 자는 많지만 그제야 고민이 되덥니다. 양장점을 내던 것은 내 꿈이었고 잘 이루어졌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에 기생해 살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더군요.
오래도록 칩거했던 일은 나를 되찾기 위한 일이었다 장담할 수 있지만 이제는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를 만나보고 싶어요. 그동안 간과했지만 타인과의 교류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법이오. 더군다나 문학에 꿈을 둔 피후원자라면 말이 통하는 구석이 있을 텁니다. 책이야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글에 뜻이 있다는 것은 내 이야기 또한 쉬이 이해해주리라 믿음직하지요.
무엇보다 세상에 내놓지 않은 글을 처음으로 받아 읽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딨겠소.
비밀 설정
현재 후원을 통해 사별한 남편인 엘리엇을 대신할 친구를 되찾고자 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대체할 인물이 아닌, 현재의 꿈을 함께할 친구가 필요하다. 밀드레드 자신도 모르고 있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다면 점차 깨달아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