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저울
2021. 5. 22.

 

 

  기저에 깔린 탐욕과 충동이 사람을 망쳤다. 마사 호프먼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파면되었고, 간호사의 일을 견디다 못해 단숨에 짐을 싸들고 영국으로 돌아가겠노라 선언했다. 게다가 매 실패를 거듭할 적마다 제 아버지를 지워낼 수가 없었는데, 결국 그 남자와 같은 이골이 났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사는 배에 몸을 싣고 나부끼는 해풍에 없던 멀미를 하며 영국에 남아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마사는 오래된 배가 가라앉을 때 가벼운 것부터 버리고 무거운 짐을 품을 정도로 미련했다. 그는 전쟁터로 떠나기 몇 달 전 군 바깥과의 연락을 끊었다. 폭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맞서 싸운 후 금의환향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마사가 미련을 버리고 돌아왔을 때, 펜잔스와 아프가니스탄의 시간에는 차이가 두드러졌다. 병상에 누워있던 부모는 물론 그나마 알던 남자마저 아들 하나만 남기고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거미줄이 쳐진 처마를 가리키며 마사에게 두 집의 위치를 일러주었다. 찾아가보니 개간된 농지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열너덧 소년은 제 집에 들른 마사를 보며 한껏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는 몇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하긴 그 개자식은 오래 전부터 허약해 빠졌지. 지 짝은 얻다 팔아먹고…”

  빈정거리듯 말했지만, 데릭은 진작에 십몇 년 전 편지에 한시의 사고로 아들을 얻었다고 적었다. 사분사분하게 두 손을 깍지 낀 소년이 시선을 둘 곳을 찾아 땀을 비질비질 흘렸다. 작은 정수리 너머로 지저분한 식탁보로 덮인 바닥의 낙서와 물건 더미가 보였다. 그동안 청소하지 않아 난장판이 된 집안. 이 애는 아비를 닮아 마을에서 유리되었고, 혼자 나고 자랐다.

  “그러게요, 그래도… 부인을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요.”

  그는 군의 동료가 마을에서 오는 편지의 출처를 물으면 해명하기 피로해 친우라고 대꾸했지만 조금도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마을의 이방인인 자신의 도움마저 사양하지 못할 처지의 어수룩한 멍텅구리였다. 그가 얼마나 마사를 사랑했든 유언은 절대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는 남자의 아들이 아니라 보호자를 잃은 소년에게 늪과 같은 동정심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다 펜잔스로 돌아온 탓이다. 아이의 올리브색 눈동자 안에는 오래 아버지의 말을 새겨 들은 바로 미약한 희망이 어려 있었다. 십대의 짧은 추억으로 불혹을 나다가 죽은 남자란.

  “…….”
  “죄송해요. 진작에 말씀 드리지 못해서.”
  “……그 말이 아니라.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 랄프 그린우드요.”
  “그래. 랄프, 당장은 집안 꼴부터 수습해야겠군.”

  마사는 랄프에게 몇 가지 필요한 것을 묻고는 최소한의 금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떠맡기다시피 한 책임을 쥔 대신 외딴 마을로 가기로 했다. 추잡한 펜잔스보다 훨씬 멀고, 군인이라고는 절대 찾아올 수 없을 법한 곳으로. 아이가 집안의 기둥과 바닥을 못으로 긁어 낙서한 그림이 눈에 익었지만, 마사가 줄 수 있는 도움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무엇보다 쉴 수 없는 곳에서는 떠나고 싶었다.
  며칠 후 다시 트렁크만 덜렁 든 여자는 기차역으로 향해 처음 들어보는 지명의 표를 끊었다. 하차한 뒤에는 다시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연장하고 몸을 실었다. 몇 번의 환승 후 종착지는 낯선 사람들의 도심이었다. 마사는 마부에게 두둑이 삯을 쥐여주고 더 먼 곳으로 달렸다. 종착지는 땅끝이었으므로 바닷가였다. 그물을 걷어올리는 어부들의 위로 소금기 섞인 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울렁거렸다. 지팡이를 쥐지 않은 손으로 이마에 차양을 내자 낮고 붉은 지붕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마사는 해안절벽을 끼고 걸으며 탁 트인 여관을 죽 훑어보았다. 한적한 마을에는 담벼락을 타고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상체를 내밀고 안을 둘러보니 낮부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내들도 있었다. 그들은 화사한 단발의 아이가 건네는 잔을 받아 호탕하게 건배하며 말했다.

  “걔가 말이야, 그냥 일만 잘 물려받으면 좋을 것을…….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랬는지. 애가 그렇게 홀랑 가버리더니 여적 편지 한 통도 없수.”
  “맞다 그래, 느이 집 아들도 군에 있었지?”

 

  덜컥 놀라 트렁크 손잡이를 움켜쥐자 나무판자로 된 문턱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에서 이야기를 듣던 주인이 한 발 늦게 마사를 발견하고 살갑게 웃었었지만, 표정을 굳혀 사양하고 뒷걸음질을 쳐 몸을 돌렸다. 식은땀이 났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적적한 마을이라면 자신 같은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이상했다. 한참 멀어져 낭떠러지에서 숨을 고르자, 더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어졌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서서히 수면 위로 말간 해가 지고 있었다. 발치 아래로는 주황빛이 물든 파도가 넘실거렸는데, 포말이 인 탓에 투명하다기보다는 거칠었다. 마사는 절벽을 거세게 내리치고 물러나는 물살이 제 응어리를 쓸어가주길 바라면서도 결코 누구에게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되려 메말라서 매운 눈가를 찍어누르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마사는 총성처럼 헛것인 줄로 알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흙바닥을 끄는 발소리 뒤에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요?”

  파드득 닿은 부분을 감싸쥐고 돌아보자, 옆구리에 빨랫감을 낀 아이가 멋쩍게 손을 거뒀다. 용건을 되묻기도 전 귓가를 틀어막을 정도로 바닷바람이 불자 그는 고개를 젖혀 밀짚같은 머리를 늘어뜨렸다가, 바다의 기세가 잠잠해진 뒤 엉킨 가닥을 한 손에 쥐고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
  “여기에 잘 오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못 보던 분이신데, 혹시 도와드릴 게 있나 해서요.”
  “그런 건…….”
  “그게, 제가 저기 있는 여관집 딸인데요, 날 때부터 여기서 살아서 아주 가끔 길을 헤매는 분을 뵈면 대신 가르쳐드리거든요? 그치만 그렇다고 마담이 꼭 길을 잃으셨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마사는 도로시의 손끝을 따라가 눈길이 닿는 여관이 아까의 그곳임을 눈치챘다. 도로시는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셨냐는 눈치로 기웃거렸다. 마사는 그 호의를 어떻게 떠넘겨야 번거롭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최대한 담백하게 긍정했다.

  “여기서 떨어진 위치에는 여관이 없소?”
  “아! 이 근방은 어려운 건가요?”
  “기왕이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 좋겠군.”
  “아하, 그럼 저희 여관은 안 되겠네요. 가만 있어보자… 아마 요즘 영업하고 있는 데라면. 거기가 열었나? 잠시만요,”

  도로시는 말릴 새도 없이 단숨에 내리막길을 뛰어갔다. 바지를 걷던 아주머니가 돌아보며 입을 달싹였고, 도로시는 도리질을 한 다음 이쪽으로 눈짓을 했다. 두 쌍의 눈동자가 버젓이 느껴져 마사는 주춤했다. 여자는 도로시의 등을 팡팡 치더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꾸벅이던 도로시가 부리나케 올라오는 동안 마사는 붙박힌 채 섰다가, 아이가 걸음을 늦추며 무릎을 짚고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자 낭패한 얼굴로 몇 걸음 마중을 나갔다. 열댓 살의 소녀는 흘러내리는 수건 자락을 거둬 바구니에 제대로 집어넣고 맑게 미소지었다.

  “열었대요, 여관. 마침 저분이 거기 여관 주인 아저씨의 육촌의 친구의 아내분 되시거든요. 이 정도면 부인의 눈에는 남남일 지도 모르지만 저희 마을은 원래 다 그래요. 아무튼 저기 배 보이세요? 바로 앞의 모퉁이를 끼고 돌면 오르막길이 나와요. 거기서 스무 걸음 가서 우측의 골목에 들어서면 숲길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쭉 걸어가면……”
  “……자네는.”
  “네?”

  평소였다면 들을 것만 듣고 제 갈 길을 갔을 텐데. 어린 소녀의 상냥한 호의는 기나긴 여정에 지친 마사가 받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마사는 겨우 쥐어짜듯 물었다.

  “그걸 물어보려고 저기까지 다녀왔나?”
  “네. …아, 안 되는 거였나요?”

  도로시가 당황한 나머지 움찔하자, 마사는 그 순수한 선의가 훨씬 거북해져 눈가를 눌렀다. 이십 년간 대가 없는 친절을 경계한 만큼 외부인에게 책임감을 가진 태도가 낯설었다.

  “그 뜻이 아니었소.”
  “그렇다면… 음, 혹시 저를 걱정해주신 걸까요?”
  “그것도……. 아니고.”

  뜸을 들이는 대화에 적응한 도로시는 말수가 적은 마사 대신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그래도 제가 불편하지는 않으신 거죠? 그렇다면 저 모퉁이 앞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마사는 신발 밑창을 바닥에 문질러내고 답했다. 안내라면 받겠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도로시가 기쁘게 웃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자 마을은 어두워졌다. 도로시는 분위기를 환기하려 마사에게 마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사는 느리게 고개를 까딱이거나 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특별히 거절하지 않았다. 도로시가 가리켰던 여관 앞을 지나던 찰나, 안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로시! 너, 거기서 굼벵이처럼 뭘 하고 있는 거야? 네가 없어서 손님이 한참 밀렸잖아!”

  “시드니? 알았어, 도와드릴 분이 있어서 그래. 금방 갈 테니까 대신 받으면서 좀 기다려 봐.”
  “그 도와드릴 분이라는 게 우리 손님은 아니지? 빨리 좀 와. 니 책임을 떠넘기면 어떡해?”
  “여관 일은…….”

  네 일이기도 하잖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밉보였다는 마음에 도로시의 볼이 확 달아올랐다. 시드니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마사는 도로시가 겨우 목구멍으로 넘긴 말을 짚는 대신 물었다.

  “동생이었소?”
  “네, 저 애는 시드니예요. 저는 도로시. 이름부터 안 닮았죠? 저보다 밝고 악동 같은 애예요.”
  “확실히.”

 

  자매라기에 두 사람은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을 했다. 턱선에서 똑단발로 잘린 시드니는 유채꽃이라면 도로시는 물에 담근 산하엽을 닮았다. 빗물에 머리를 적시면 창백해보이는 옅은 인상.

  “그런데 닮든 말든 그게 무슨 문제요?”
  “문제라기보다는… 다들 그렇게 물어보세요. 얼핏 보면 가족 같지는 않잖아요. 제가 더…….”


  마사는 우물거리는 도로시의 말을 듣지 않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상관 없소만. 거기서 잘 것도 아니고.”
  “그, 그런가요?”
  “길은 자네가 가르쳐주었잖나. 흠, 급하다면 여기서 헤어져도 이미 한 번 들었으니 됐소.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 보이고.”

  마른 빨래가 오래 구겨진 채로 놔뒀다가는 주름이 더 크게 질 터였다. 도로시는 시드니가 아닌 아버지를 생각하더니 손을 늘어뜨렸다.

  “급한 건 아니지만… 음, 괜찮으시겠어요? ……원래 여관 일은 제가 많이 거드는데, 제가 없어서 그러나봐요.”
  “애도 아니고 걱정할 게 무어가 있담.”
  “그래도 죄송해요. 약속한 거잖아요. ……아, 대신 도착하시면 제 앞으로 편지 한 통만 남겨주시겠어요? 좋다고 들은 곳이긴 해도 걱정이 돼서요.”

  도로시는 급하게 메모지를 찢어 내밀었다. 낯선 주소를 적은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급해도 공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마사는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어 두 번 접었다.

  “노력해보겠소.”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리다.”

  도로시가 먼저 감사를 표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마사는 가볍게 눈짓을 하고 돌아섰다. 이 정도면 덕분에 제 몫으로 남았던 짐을 충분히 덜어냈다. 도로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걷는 마사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드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가 다정했던 덕분이었는지, 혹은 여관이 원래부터 좋았기 때문인지 마사가 묵게 된 곳은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여관에는 펍이 없어 2층의 끝방에서 느긋하게 잠들 수 있었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특히 마을에는 도로시가 사는 곳도 그랬듯 관광객이 없어 한적했는데 부지런히 깰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풀어헤쳐둔 그는 며칠을 내리 쉬고 나서야 잊은 것을 발견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이 앞을 돌아보려다 한참 전 접어둔 쪽지를 발견한 것이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 낱장이 쭈글쭈글해졌지만, 아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마사는 창문 바깥과 방 안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었다.

  「도로시.
  자네가 일러준 여관에 도착했소. 길을 헤맨 건 아니지만 일이 있었다오……」

 

 

 

 


  옆 마을에서 도로시와 주고받은 편지는 세월을 거듭해 많이 쌓였다. 마사는 그의 첫사랑 앤디가 얼마나 로맨틱하고 장난기 많은 남자였던지 철저히 도로시의 시선에서 파악했고, 마을의 어느 집에 염소가 태어났고 어느 날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어려운지 욀 수 있게 되었다. 도로시는 아버지의 일을 거드느라 바빴고, 마사는 영국 내에서 도로시에게 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털어놓았으므로 굳이 도로시를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산책을 좋아하더라도 도로시를 보기에는 낯이 부끄러웠던 탓도 있었다. 그새 도로시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어디에 오래 다녀올 테니 답장을 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 과거가 무색하게 우연은 맞아떨어졌다.
  처음에는 짧아진 머리칼에 묘한 위화감이 들어 섣불리 묻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을 헤아리는 말씨가 편지처럼 다정했다. 마침내 재회를 확인한 마사는 그 만남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호텔 판도라에 머무르는 도로시가 낯설었지만 바다를 앞에 둔 그는 익숙했다. 그러나 상황이 나빴다. 차라리 그가 나고 나란 마을에서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 도로시는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공자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러신 것 같지가 않았어요…….”

  도로시는 피아노줄에 감긴 카를이 그랬듯 여관에서 목을 맨 시체를 보았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그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도로시의 안에서 그 죽음을 받아내고 견뎌야 하는 이들은 무고했다. 그래도 그는 그보다 외롭게 죽어간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할 줄 알았다. 마사는 편지에 곧장 답하는 법이 없더라도 유독 그 건에 관해서는 고민이 길었는데, 아무리 생명을 다루느라 무감해져도 남에게 설명하기에는 생소한 덕이었다. 답장에는 도로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썼지만 가슴 한 구석이 쿡쿡 찔렸다.
  그래서 도로시와 카를 공자의 일을 연계했을 때, 마사는 아까 왜 누군가 그를 토닥여주어야 한다며 등을 떠미는 기분이 들었는지 이해했다.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엉거주춤 팔을 둘러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돌아가고 싶어요, 마사.”

  다행스럽게도 도로시는 무서운 건 무섭다, 싫은 건 싫다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작고 긴밀한 간절함이 어린 말에 심장에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마사는 프랑스를 그리워해도 결코 입밖으로 낼 수 없었던 자신을 상대에게 비춰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와 나는 적어도 살인범은 아니니 지금 당장은 괜찮지 않겠나.”
  “아하하, 그럼요. 저는 마사를 믿는걸요.”
  “…….”

  볼링을 쳐 도로시를 달래고 돌려보내는 길, 마사는 칠 년 전처럼 술렁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제 삶은 어떻게 마무리 되든 소용없다고 치부했을 뿐이라 품값을 매기지 않고 손을 내민 도로시마저 그렇게 되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낌없이 베풀고 빼앗기는 데 익숙해져야 했던 그와 다르게 마사는 제게 남겨진 것들을 생각했다. 랄프와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고 그나마 신문을 읽으며 지내게 된 것에는 도로시의 공이 컸다.
  그는 위젠필드에게 자신이 뱉었던 말을 곱씹었다. 나는 이 판 꼴이 어떻게 돌아가든 전혀 손해볼 게 없으니까. 자네가 해결하면 여기서 나가고 싶어하는 양반들에겐 참 좋겠고, 아니면 말고. 그러나 동전을 던지듯 도로시의 목숨을 저울질할 수 없었다. 그 양반, 이걸 알면 참 신나겠군.
  마침 옆에는 얼마 남지 않은 직원들이 눈에 띄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유람선에서 발꿈치를 들고 팔을 꺾던 무용수와 다른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 환각이 나타나고 방황한 경험을 되새기며, 마사는 이 소문의 근원지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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