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심
2021. 4. 30.

 

  호텔 판도라는 예외의 연속이다.
  마사는 기꺼이 초대장을 내어준 친우를 잊지 않았다. 처음 초대장을 들고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에는 어차피 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밤부터 낮까지 늘어지게 자는 삶이 호화로운 장소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무어가 달라질 게 있겠냐 생각했건만, 평탄한 삶에는 굴곡이 지고 있었다. 아마 쿠르트는 이 상황을 예상했을 게 틀림없다. 불가능한 예측이지만, 마사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눈앞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접시를 깨뜨리고 테이블보를 찢어놓을 야수가 있었으므로.
  쾅! 야수가 팔을 휘둘러 바닥을 내려찍자 마사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 데구르르 굴러갔다. 걷는 것보다 구르는 게 빠른 인간이라니, 이만큼 불편할 일도 없겠지만 며칠간 익숙해지려 갖은 애를 쓴 보람이 있었다. 지난번에 야수의 열쇠를 갈취해 주방에서 벗어난 덕에 화가 났나, 짐작해보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야수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점점 가까워지던 찰나.

  “호프먼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재빨리 자신을 주워들고 달리기 시작하는 신부 덕분에 살았다. 마사는 술을 입에 댈 일이 거의 없을 그가 귀중하게 브랜드 글라스를 두 손으로 받쳐 올리는 것을 지켜보며, 앞으로 못 볼 꼴은 지금 다 보겠다고 생각했다. 



 


 


 

  베누스가 가쁜 숨을 쉬며 소연회실에 들어서자마자 벨벳의자를 둘러보며 찾았다. 이쪽이에요. 데보라가 작은 목소리로 한쪽 다리를 들고는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마사는 바닥을 박살낼 듯 크게 도약해 문턱에 다다른 야수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돌아섰다. 소연회실 가운데에 신부와 신사 하나를 세워둔 작전은 아무리 가늠해도 무모했지만, 그만큼 아벨은 성가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람의 죽음에는 놀라고 야수의 난동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일이 지나치게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까. 마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려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고요하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납득했다. 감상하고 있을 시간도 없이, 옆에서는 루시엔이 굵은 밧줄을 프라이팬에 단단히 묶었다.  

  “창세기 1장 3절의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신실하지 않게 된진 오래되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팔을 튕기자 불꽃이 피어올랐다.
  “빛이 있었고.”
  “자네는 쓸모는 있지만 참 태평하군.”
  “긴장할수록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제가 실로 전지전능하다면 안 될 것도 잘 풀리겠지요.”

  촛농이 녹아 밧줄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마사는 와인이 든 잔을, 그러니까 고개를 저었다.

  “그것 참 좋겠소.”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ma'am.”

  매듭 위에서 녹은 물이 굳어가며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루시엔은 테이블 위에 한 겹 더 쌓이듯 올라간 티테이블을 밟고 벽면의 커튼 봉에 밧줄을 한 번 둘러 내렸다. 촛농이 마테오에게 떨어지자 바르르 몸을 떨던 것은 잠시, 그는 단단한 문에 박치기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에 위안을 가졌는지 몇 번의 불평을 뱉고 얌전해졌다. 성가는 점점 고조되어 야수가 한 번 콧김을 내뿜으며 흉부가 오르락내리락하자, 마사는 움찔하곤 바닥으로 내려가 머리를 숙였다. 여러 번 반복하니 와인으로 흥건해진 바닥은 끈적하고 미끄러워졌다.

  “이렇게 하면 되나?”

  옆에서는 베누스가 테이블보를 둥글게 말아 덧대 밧줄의 길이를 늘렸다. 점차 길이가 넉넉해지자 프라이팬은 천장의 중앙으로, 하지만 샹들리에는 피해서 야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로 오르려는 마사의 손잡이를 흔쾌히 쥐고선 눈을 마주쳤다. 마사는 한 번 동태를 살피곤 불만족스러운 듯 가볍게 진동했다.

  “자네는 손에 힘이 없군. 혹시 모르니 나이프도 같이 떨어지게 매달아두시오. 금색으로 된 건 빼고.”

  베누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세팅된 나이프를 가져오는 한편, 그의 도움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선 마사는 몸에 얇은 실을 묶고 징검다리를 건너듯 힘차게 뛰었다. 그러자 몰래 잠입한 것 치고는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가 데보라의 반대편에서 바퀴를 굴려 마사를 받아주었다. 소연회실에 피아노가 두 개라. 야수가 쉽사리 눈치챌까 걱정이었지만, 여차하면 이 피아노에게 저 야수를 들이받으라고 시키면 그만일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피아노의 버팀목에 실을 한 바퀴 두르는 사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전은 이랬다. 데보라가 연주하는 피아노 위에서 마사가 망을 보고 있다가, 야수가 태만해질 즈음 눈에 와인을 뿌려 앞을 못보게 한다. 그와 동시에 신부의 뒤에서 분신처럼 자리를 지키며 야수의 동태를 살피던 헤이스가 커튼봉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긴다. 그러면 줄줄이 딸린 테이블보에 묶인 나이프 등등의 갖가지 물건이 우수수 쏟아져 박혀 그가 온데간데 못하게끔 자리를 좁혀두고, 마침내 가장 무거운 프라이팬이 떨어져 야수의 머리를 강타한다. 
  이 정도면 되었나? 충분히. 서로 주고받는 인간과 가구, 식기들의 눈빛이 비장하다. 마사는 마지막으로 헤이스에게 눈짓했다.
  끝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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