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타 헤네시
2022. 7. 13.

 

로열 베리쇼와의 관계

머더 미스터리 소설 대필가

 

키워드

달궈진 무명 마체테 / 레코드 가게의 족제비 / 염세적인 낭만주의자

 

세상도 음악도 핑그르르 돌아가지요?

 

Rolf Armstrong, 〈Pola Negri〉 (1924)

 

 알록달록한 드레스보다 점프 수트가 어울릴 법한 여자. 폭탄을 연신 떨어뜨린 듯한 곱슬머리가 유행에 뒤처진다. 그는 쇄골은 드러내고 허리는 역삼각형으로 잘록한 원피스를 즐겨 입는데도 여전히 어느 부분이 꽉 끼는 것처럼 굴었다. 팔을 뻗다 못해 휘두르고, 비를 맞고 구두 굽이 부러질 정도로 뛰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6년 전까지 군복을 입고 있었다. 비명이 끊이질 않는 환경에 자원한 열의로 혼탁해진 쥐색 눈은 수시로 말라 눈을 자주 깜빡이기 일쑤. 상표를 읽을 때면 콧잔등까지 흘러내리는 안경을 쓴다. 그래도 그를 지금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왼쪽 약지와 소지를 한마디씩 잃은 과거의 영광이다.

 

로레타 헤네시 | 42 | 180cm 82kg

 

지칭 대명사

she/her, they/them

데미걸

 

기타

레코드 가게의 족제비

 초대장은 근무지 앞으로 왔다. 레슬리가 그에게 물었다. “로열 베리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헤네시는 동료의 손아귀에서 편지를 낚아채 갔다. 로열은 개인 일정으로 인근을 지날 즈음이면 레코드 가게에 와 흡연실에서 헤네시와 밀회를 나눴다. 헤네시는 철부지처럼 웃고 큰 손으로 연신 박수를 치며 우스꽝스럽게 너스레를 떨다가 로열이 상체를 숙이면 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레슬리는 순순히 두 손을 들어 항복하곤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사이야?”

 늘 있는 일이다. 그렇잖아도 헤네시는 수완이 뛰어났다. 사람에 맞춰 장르를 가리고 음악을 추천하는 솜씨나, 어떤 진상 손님도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친화력이나 좋은 평가를 쌓게 했다. 그리고 교양을 들먹여 으스대고 싶어하는 신사들은 그를 환영한다. 그렇군요! 잘 몰랐어요! 헤네시는 죽을 맞출 줄 아는 점원인 동시에 살짝 멍청했다. 음악은 알되 영화는 모른다. TV 쇼는 알되 문학은 알 듯 말 듯 하다. 예술이란 얼키고 설키다 못해 하나의 덩어리인데도 헤네시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손님들은 다른 이유로도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본인의 입으로 말하길 그는 무엇이든 맛깔나게 써준다. 배우자 있는 부인에게 쓸 연애 편지, 싸구려 협박문, 하물며 싫어하는 사람을 엮은 팬 픽션—이런 데 쓰는 말이 아니고 팬도 아니지만—마저 돈만 쥐여준다면 거침없이 써제낀다. 헤네시의 글은 적나라하여 종이를 넘어가게 하는 힘이 있고, 다른 이들이 가질 수 없는 감성을 갖는다. 휘몰아치는 폭풍우, 범람하는 파도, 틀림없이 넘쳐 흐를 직설적인 감정들. 전장의 경험으로 쌓은 기묘한 현실 감각은 댐이 되어준다. 의뢰인들은 헤네시의 글에 문학적 가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한 번 훑어내리고 한껏 웃어제끼다 쓰레기통에 처박을 선정적인 오락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헤네시는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표하다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원고지를 보고 조금은 서러워하다가, 다음 날이 되면 동전 몇 개를 받고 다음 글을 구상한다.

 이미 헤네시의 부업은 단골 손님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입 싼 레슬리가 눈치 없이 점장에게 말했고, 불려갔던 날 헤네시는 심장이 조여 쓰러질 뻔 했으나 무사했다. 가게에 누를 끼칠 정도가 아니라 암암리에 손님을 끌어모을 수준으로만 한다면 용인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의뢰인들은 헤네시를 ‘그런 일’로 부를 때 ‘라이터가 없다’고 한다. 헤네시는 담뱃불을 붙여주며 의뢰를 받는다. 로열도 헤네시에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로열 베리쇼는 대단한 ‘로열 베리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헤네시에게 ‘그런 일’을 기대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비공식적 연인이라고들 말했지.

 “레슬리, 당신은 몰라도 돼요!” 헤네시는 바짝 깎은 손톱을 긁어 편지 봉투를 뜯었다. 손끝이 조금은 떨린다. 지금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만장자의 유산, 화려한 치정극, 아니 배 채울 만한 따뜻한 만찬과 노래와 춤, 근사한 사랑! 그 무엇이 되었든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다.

 

달궈진 마체테

 펍에 갈 적이면 취객들의 싸움을 말리는 방해꾼이 하나씩 있다. 그 사람이 로레타 헤네시, 바로 오지랖 넓고 눈치 없는 인간 되시겠다. 단순히 싸우는 건 무섭다는 이유로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꾼들은 열이 오르거나 맥이 빠진다. 전자의 경우 한 대 얻어맞기도 하는데, 헤네시는 한 팔로 막고 “너무하군요!” 라며 도망친다.

 쉬이 짐작할 수 없어도 그는 한때 전쟁터의 마녀였다. 남장을 하다가 1942년 WAAC로 넘어가 WAC의 역사를 함께했다. 파괴와 죽음이 지속된 재앙은 헤네시를 고취시키기도, 수렁으로 가라앉히기도 했다. 종전 이후 그는 레코드 가게에 취직했지만 끓는 속을 달랠 수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각종 쓰레기 소문에 망상을 덧붙인 엽편, 엑스트라가 수도 없이 죽는 엽기 스릴러, 다음은 누더기 같은 머더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무명 마체테

 헤네시는 손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그의 쌍둥이 미리암은 로열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헤네시는 미리암에게 원고를 맡겼다. 돌아온 것은 혹평 중 혹평 뿐으로 원고도 받지 못했다. 정말로 글이 형편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다. 크게 낙심하고 일상의 궤도에 오른 뒤, 그때의 소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 즈음 손님 하나가 헤네시에게 말했다. “문장력이 형편없는 걸. 당신이 ‘그’ 로열 베리쇼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나? 이번 신작도 근사했는데, 제목이…….”

 헤네시는 그 길로 부리나케 가판대로 달려가 신문사별로 오늘 자 신문을 몽땅 사들였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내렸다. 아는 제목이 대중의 극찬을 받고 있었다. 헤네시는 자신이 쓰고 로열이 다듬은 『그 흉내지빠귀 여인』을 읽으며 눈물이 찔끔 났다.

 그는 로열에게 직접 찾아가 일방적으로 항변했다. 목이 갈라질 정도로 소리치는 말싸움 뒤, 조금의 슬픔, 속상함 따위를 눌러 삼키다 보니 협상은 어찌 되었든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끝났다. 헤네시의 권리는 억울할 만큼 보장되지 않았어도 로열이 상상 이상의 보상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그의 작품인지 로열과 헤네시를 제하면 알 길이 없다. 그의 퇴역보다 로열의 영화계 은퇴가 빨랐으므로 모든 작품을 그가 쓴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유명작 중에서 헤네시의 작품은 분명 존재한다. 로열의 명성을 붙인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마련이다. 헤네시는 로열의 영화를 자주 보고, 로열은 그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보내며, 헤네시는 주변에 공모전에 낼 소설을 쓰겠다고 말해두고 로열에게 보낼 작품을 쓴다. 헤네시는 원고를 로열에게 직접 가져다 주거나 미리암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암암리에 이루어진다. 아마도.

 로열은 85번째 생일 기념 신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생일을 축하하여 모든 극장에 그의 작품을 올리고, 유명작 재판을 찍어내며 신작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그 작품은 로레타 헤네시가 썼다. 파티가 끝나는 날 세상에 공개할 예정이므로 로열의 생일 파티에 헤네시는 응당 초대 받아야 한다(물론 헤네시 본인의 판단으로는).

 

염세적인 낭만주의자?

하여튼 로레타 헤네시는

 대외적으로는 단골 손님과 점원 사이. 가끔 레코드 가게의 흡연실에서 노닥거리며 화려한 연애 이력에 한 줄 보태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글쎄. 한동안 매사추세츠 또는 캘리포니아의 자택에 들락날락 하더니 어느 기점부터 발을 끊었다.

 여전히 성실한 로열의 가정부, 미리암은 헤네시의 쌍둥이였다. 헤네시의 소식은 미리암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로열과 로레타의 비밀은 기필코 발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레타 헤네시는 ‘일단’ 베리쇼와 지나치게 무관하다. 유산을 논하는 생일 파티에 얼굴을 들이민 이상 쉽게 오해를 사고 마찰을 빚기 쉽다. 감히 네 주제에!

 

추신

 로레타 헤네시의 글은 현실적인 장치로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두는 복선과 반전에서 재능을 발휘한다.

 

어빙 홀 클라인

 럭키 스트라이크. 우리는 야전병원에서 잔해를 나눴고 작별한 다음 그것들을 불쏘시개로 썼다. 연기를 지독하게 마셔서 살 수 있었다. 이다지도 부끄러운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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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로열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음,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설정은 거짓. 적당한 보수만 준다면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픈 마음도 없음. 어차피 출판사에 찾아가봤자 자신의 글은 인정받지 않기 때문… 로열이 헤네시의 글을 돌려주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헤네시는 진작 출판사에게 복사본을 보여주고 퇴짜를 맞은 경험이 있음

 감정의 굴곡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고저가 없음. 로레타의 동력은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변덕쟁이처럼 보이지만 염세적임, 로레타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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