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 시험을 치고 나오자 데면한 대학 동기 J가 기다렸다는 듯 담배를 권했다. 이반은 직접 거절하는 대신 불을 붙여주었다. J는 재작년부터 이반과 수업을 여러 개 함께 들었는데, 성적 우수자로 추천을 받아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화성에 올 때에도 함께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에 친구가 많은 성격의 그는 이반에게 가정사를 하소연하는 일은 없어도 모난 부분 없는 이반과 놀러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이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친구라고 했다. 이반을 이끌고 붉은 먼지가 날리는 공터에 데려갔다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홀랑 두고 떠나기도 했다. 오늘부로 화성에서 수학하는 날은 마지막이었다. J는 한참 푸른 하늘을 응시한다.
“이러고 있으니까 저번 학기 생각난다.”
“그런가요.”
“그때에도 마지막 시험이 그 교수님 강의였잖아. 맨날 제일 늦는다니까.”
“그건 그랬었죠.”
“게다가 거기서 네 시험지를 베꼈었거든.”
이반은 그의 입으로 듣기 전까지는 조금도 몰랐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로요?”
“진짜.”
“교수님께선 알아보셨을 텐데요.”
“안 들켰으니까 학점이 잘 나왔지. 이제 와서 말하게?”
“……무슨 대답을 바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웃던 J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재떨이에 손을 털었다. 이반은 속상하지 않았지만 미소짓고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냐고 눈으로 묻자, J는 느슨하게 어깨에 힘을 뺐다. “농담이야. 이럴 땐 한마디 해야지. 왜 그랬냐, 실망했다…….” 덩달아 어깨에 둘러멘 가방 끈이 흘러내렸고, 이반이 돌아보았다. “화나지 않았는데요.” J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반은 그가 남은 개비를 모두 태우고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테라토리를 옮길 때마다 이반은 갈 길을 찾아 인파 속에 바삐 걸음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는 뒷통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검고 긴 머리칼을 단단히 묶은 여자가 하나. 이반은 홀린 듯 짐을 놓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컵 캐리어를 들고 오던 레이첼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반?” 이반이 놀라서 돌아서자 레이첼이 한 번 더 물었다. “거기서 뭐해?”
“너무 늦었잖아.” 더욱 멀어진 여자가 한 발 늦게 도착한 일행에게 다정하게 팔짱을 끼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아니요, 아무것도요.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아하. 그럴 만도 하지~ 워낙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야.”
이반은 카페 라떼를 두고 아메리카노를 고르며 호의에 미소지었다. 레이첼은 학기 중에도 이반을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기 때문에 이반은 쉽게 홈스테이에 적응할 수 있었다. 타지에서 그를 만난 건 다행이었지만, 한 사람은 대체할 수 없었다. 어린 이반의 손을 잡고 유로파에서 타이탄으로, 타이탄에서 유로파로 자리를 옮기던. “그건 그렇고, 마지막까지 받기만 하네요.” 레이첼은 됐다는 시늉을 하며 다리를 꼬고 앉아 등받이에 몸을 묻다시피 했다.
7년 전 악몽 속에서 구조선에 몸을 실은 이후, 뉴욕나우웨어는 2070년 7월의 탑승객들을 기리며 생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 혜택 사이에서는 평생 NYNW의 중요 고객으로 우대하겠다는 것도 있었다. 이반은 두 번 다시 오시리스에 발을 들이지 않아도 지구 및 테라토리를 오가며 여러 차례 새단장한 함선에 탑승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레이첼은 저렴한 값에 좋은 자리를 배정 받은 이반을 신기하게 여겼다. 이반은 캐러네이드 호의 생존자로 회자되는 게 썩 달갑지 않아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탑승구로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레이첼과 가볍게 포옹했다.
깜박이는 숫자 몇 개, 탑승 대기 중이라는 문구가 짤막했다. 인파가 차례로 승무원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금세 점멸할 듯 흔들리던 전등이 매끄럽게 켜졌다.
짧게는 사흘, 길면 열흘 남짓한 비행에서 이반은 가끔 유리 캡슐에 들어가길 미뤘다. 다 지난 일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은 아무것도 쥐지 않은 마른 손이 화끈거렸다. 페이스 허거의 체액이 엉겨붙은 조타실의 레버를 쥐고 당겼던 그 손. 오시리스에서 타이탄으로 항로를 맞추기 위한 시도는 실패했지만, 상흔은 남았다.
이반은 내부도를 찾으려 벽에 손을 짚고 걷다가 숨이 멎을 뻔했다.
“손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안드로이드 캐빈크루가 투명하고 푸른 유리알을 이반과 맞추고 있었다. 이반은 그 눈을 본 적 있다.
“…….”
“마르티네스 씨?”
“식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델핀과 다르게 머리는 반듯하게 빗어넘겼지만, 시원한 이목구비는 델마 헤이우드를 닮았다. 기계가 사무적으로 미소지었다.
“1층의 중앙에 있네요. 계단으로 내려가면 곧장이니까, 찾기 어렵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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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후 이반이 스무 살일 때 뉴욕나우웨어의 캐러네이드 호와 비슷한 함선에서 재회한다면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를 주제로 로그를 교환하기로 해서 작년 여름부터 쓴 글인데... 완성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그치만 다 쓰고 싶어요 기약이 없어서 일부만 떼어서 올려놓습니다 완성을 한다면 이 글은 삭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