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 뒤에는 신기루가 있고
with. 아쿠아마린
학교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입을 모아 아쿠아마린이 성실하다고 칭찬했다. 그의 근면은 쳇바퀴와도 같아 영원을 살아가는 보석에게 적절한 성질을 띤다. 다른 보석으로 하여금 틀어지거나 부서지는 것도 아니어서, 아쿠아마린은 눈에 띄지 않을 자리를 차근히 채워나가는 일을 맡았다.
한편으로 그는 엉뚱하고 무모하다. 시트린은 가끔 아쿠아마린의 기행에 관해 불평했는데, 몰래 수지를 훔쳐 바르고 호수에서 헤엄을 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속에서 사색했다. 그리고 가볍게 긍정한다. ‘이대로가 좋아요. 그러니까 지키고 싶어.’
“왜?”
플루오라이트는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가 묻는다. “무엇으로부터요?”
“월인으로부터, 그러니까 반짝임을 탐내는 월인들이 찾아와서 우리를 달로 데려가려고 하니까요.”
“에~ 같이 달로 가면 안 되는 거고요?”
“월인들은 우리를 부숴서 데려가잖아요. 달로 간 보석들 중 무사히 돌아온 사람은 없어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우리는 몰라요. ……그리고 플루오, 수지 없이 물에 들어가지 마요.”
플루오라이트가 수면에 발끝을 대다가 움찔하고 뗀다. “설명을 시키면 한눈 팔릴 줄 알았는데! 들키다니. 그냥 담그면 부서져요?”
“백분을 다시 발라야 하죠.”
“시트린 선배한테 수지를 훔쳐서 혼나는 거나 백분을 다시 발라야 해서 혼나는 거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그럼……. 발만?”
“그거 좋은 제안이네요! 읏차.” 플루오라이트가 지체 없이 종아리까지 호숫물 속에 다리를 집어넣는다. 발목까지 수면을 넘은 시점에서 아차, 하고 속도를 늦춘다. 호수라 물은 고여있지만 만일 거세게 흔들린다면 다리가 그대로 떨어져 나갈지도 몰랐다. 백분이 스멀스멀 물의 표면에 떠밀려 번지고, 금세 청록색 줄이 그어진 다리가 드러난다.
“선배는 지난번에도 월인을 봤다고 했죠? 저도 가끔은 싸우고 싶어요~ 워낙 할 게 없는 걸. 옷을 잘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을 읽는 건 재미없어요.”
“아직은 배우는 단계잖아요? 플루오에게도 할 일이 분명 주어질 걸요.”
“적어도 싸우는 건 아니겠지! 파트너가 갖고 싶은데.”
“음, 플루오도 지금은 테테 선배와 파트너죠.”
“그건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등을 맡길 정도로 친밀하고 중요한 보석이 되고 싶습니다! 파트너라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요?!”
플루오라이트가 수면을 발로 차는 바람에 아쿠아마린이 물을 맞았다. “플루오.” “앗, 거기까지 튈 거라곤 생각 못해서.” “아니에요,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찡그린 눈꺼풀도 어느덧 백분 아래의 푸른 빛이 돌아, 아쿠아마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물가로 헤엄쳐 왔다. 흐릿한 시야에는 이제 만 이십 년 된 보석이 손끝으로 물을 헤집는데, 아쿠아마린은 그런 플루오라이트에게서 희미한 빛을 보았다. 경도가 높다는 말에 신나서 부리나케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시트린에게 한참 주의를 들었던 제 기억의 빛이. 아쿠아마린은 뭍으로 올라와 어린 보석 옆에 앉았다.
“왜 파트너를 갖고 싶어요?”
“그러면 적어도 파트너한텐 중요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쿠아마린이 깜짝 놀랐다가 느리게 미소를 지었다. 경도가 다르더라도, 서의 해변에 떠밀려 태어나는 보석들은 같은 성질을 지닌다는 걸 플루오라이트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두문불출하던 만큼 여러 보석에게 피로를 안겨주었지만, 그들은 여지없이 플루오라이트를 아낀다. 다이아몬드도 아쿠아마린을 긍정해줄 것이다. 칠백 년에 이르는 세월이 그를 증명하고, 아쿠아마린은 부랑자가 될 플루오라이트마저 사랑한다.
“이미 플루오는 많은 보석에게 중요해요. 파트너가 아니어도요.”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면을 바라보던 플루오라이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는다. 내내 휘젓던 발도 가만히 축 내리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거울과 같은 호수와 눈을 마주친다. 그 옆에는 아쿠아마린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고민은 금세 풀릴 게 분명하다는 듯, 치기 어린 걱정은 안개처럼 금세 걷힐 거라는 눈치로. 플루오라이트는 조금 입꼬리를 비틀면서 꿍얼거렸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그럼 믿어도 돼요? 진짜? 선생님도 저 좋아하는 거 맞죠?”
“당연한 말을.”
“그럼 딱 한 번 더 해봅니다?”
“뭘?”
“그런 게 있어요~ 선배한텐 비밀이야.”
그가 고개를 들고 아쿠아마린을 향해 가볍게 웃었다. “그런 건 없는데.” 아쿠아마린은 그 얼굴이 플루오라이트가 처음 눈을 뜨고 희망에 눈을 반짝이며 미소지었을 때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플루오라이트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옷 위로 가볍게 다독이자, 플루오라이트는 으쓱한다. “왜요? 궁금해?”
“물론이죠. 플루오를 믿지만, 나중에라도 듣고 싶어요.”
“좋아. 대신 괜찮아지면. 다 괜찮아지면요.”
천천히 플루오라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젖은 물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뚝뚝 흘렀다. 고민을 반쯤 물에 씻어난 것 같은 눈치였다. 축축한 발자국을 내며 돌아가려는 그를 보며, 아쿠아마린은 묘한 위화감을 들추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괜찮을 거예요. 나중에 봐요, 플루오.”
아쿠아마린은 갓 태어난 보석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든, 적당히 모른 척 한 채 기다려줄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런 고민의 끝에서는 ———할 테다.
그리고 그는 몇십 년 후 방관을 후회하고 빛을 찾아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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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귄님의 연성을 이었어요~ 멋진 아쿠아마린을 보시려면 이쪽으로! ^_^
열람하실 때 모 시나리오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