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새는 부레
2022. 2. 15.

 

 친애하는 조세핀,

 십 년 전 성탄절 널 해고했던 날을 기억해?

 우리는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법이 없었지. 네게 아들이 생긴 뒤부터, 아니, 나 홀로 몸을 건사할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겼을 때부터였다.

 해고하기 전에도 골치 아픈 부탁을 일일이 들어주는 건 너 하나 뿐이었으니 우리는 참 오래도 함께했다. 그래도 여전히 네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다른 길을 걷기로 한 건 어쩔 수 없더구나. 넌 조금도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은퇴하려는 나한테 아주 많이 화를 냈지. 마침 그땐 내가 눈독 들이던 작가의 영화 섭외 제안이 들어왔던 참이라 크게 기뻐해줬었는데, 나는 들을 생각도 않고 연예계를 떠나겠다고 했어. 응당 해명을 들을 자격이 있는 너를 무시하고. 그리고 나는 네가 상처 받을 대로 내버려 뒀다.

 한 세기가 넘는 삶을 살고 여러 감정을 재현하며 영상에 나왔는데도 내 날것의 감정을 다루는 데 미숙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니. 하지만 십 년 전의 나는 그랬다. 두려운 건 초연해질 수 없는 감정인가 봐. 너는 내가 실종된 날들 동안 괜한 일을 네 책임으로 돌렸을 테니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너를 볼 면목이 없겠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 난 마탈린이야. 나는 잘 지낸다. 그리고 가끔은 외로워.

 아직도 그날 모웨나의 의중은 헤아릴 수가 없다.

 

 

 

Fidel Fernando

 

 

 테크노 음악이 뜨겁게 파티장을 달구고 있었다. 거품이 풀풀 날리고 물에 잠겼다가 떠내려가길 반복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물살이나 다름 없었다. 인파에 섞여들기 위해 강행한 일이었지만, 마탈린은 자신이 지나치게 미숙한 탐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몇 년간 해온 일은 탐정 모웨나 마조리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나이든 만큼 수영할 일은 없겠지만,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선배드에 앉아있을 정도는 되지 않던가. 그러면 아는 사람이 느는 것은 순식간이고, 남은 기한동안 대화를 트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탈린은 수영장을 보자마자 그 생각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물은 아주 끔찍했다. 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탈린은 그 강물에서 빗겨나간 채 물로부터 먼 곳에 섰다.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모웨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곤 해, 마탈린은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답했다. 개중 하나는 뺨을 붉히며 웃고 마탈린에게 수영을 권했는데, 마탈린은 말을 잘랐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 말 한마디에 상대는 이제 수영을 가르쳐 달라는 말인 줄 알고 뛸 듯이 기쁜 얼굴을 하며 바라본다. 모웨나는 앞으로 넘어오는 잔머리를 쓸어넘긴다. 블라우스 위에 기장 짧은 재킷을 걸친 채로는 물과 먼 사이였다. 상대방도 그것을 뒤늦게 깨닫고 지적했다. “아, 로비에 수영복을 팔 거예요……. 전 그냥 갖고 왔지만요. 그대로는 풀장에 들어가기 어려울 텐데…….”

 “수영을 배우려는 게 아닙니다.”

 “네?!”

 화려한 문장으로 수놓아진 튜브를 낀 여자의 머리칼이 흔들린다. 이미 한참 물에 젖어 끝은 달라붙고 가늘어진다. 아틸라스는 모웨나의 의중을 짐작하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가, 다시 골똘한 표정이었다가 눈을 깜박이며 반박한다.

 “하지만 약속했었잖아요? 분명 포켓볼도 치고…! 지난번에는 제가 신세 졌잖아요. 그러니까…….” 점차 커지는 스피커 음량에 목소리가 묻힌 아틸라스는 마탈린의 말을 되새긴다. 큐대를 잡고 당구공을 겨눌 때였다. 아틸라스는 지금처럼 마탈린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는 단지 헤엄치기 위해 연회에 참석한 인간이라 오델로나 체스 따위는 문외한이었다. 그나마 쉬워 보이는 게 포켓볼이라 판단했는지 마탈린에게 배움을 청한 것이다. 아틸라스는 소심하지만 의욕이 있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제자였다. 두 번째 경기에서 아틸라스는 다른 볼을 치우기도 전에 검은 공을 집어넣고 울상이 되었다. 마탈린은 그때……. “긴장을 풀면 물과도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식의 말을 했다. 지금은 아틸라스가 되돌려주었지만.

 모웨나는 질색했다. “그런 데 친해질 필요는 없을 걸요.”

 “물이 많이 무서우세요?”

 물을 무서워하는 인어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생채기가 났던 눈썹이 시큰거려서 실소가 터졌다. 모웨나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그냥 어느 물에든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마탈린은 바다로 가는 인어가 싫다.

 “아니, 무슨… 그래요. 그런 거로 하죠. 그래서 아틸라스, 당신이 도와줘야 합니다. 단 물에 적응하는 것 말고.”

 “그런 거였구나…!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실례했어요…….”

 “내 자존심이 용납 못해서요. 앞으로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고요.”

 “그래도… 알겠어요! 무얼 부탁하실 건가요?”

 마탈린은 기다렸다는 듯 탐정으로 돌아왔다. “흰 콧수염을 단 웨이터의 말에 따르면 주최자에 관한 수수께끼가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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