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2020. 12. 1.


  오시리스를 기다렸지만 기대한 여행은 아니었다. 이반은 캐너레이드 호의 승객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캡슐에 들어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해들리는 새벽에도 선내를 점검하는 캐빈크루였다. 이반은 성실한 직원의 옆에서 걸으며 보조를 맞추는 동안 어른의 시선에서 델핀의 안내를 복습했다. 그는 해들리의 곁에서 마주하는 캐러네이드 호의 정적을 반겼다. 유로파에서라면 일출을 볼 시간대에 몸을 눕히면 자동문이 늘어선 복도의 진풍경과 무던한 이야깃소리를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우주선의 모든 것에 들어찬 공학, 누군가의 미련, 이반이 혼자 남은 방 안을 굴러다니던 볼트와 너트 따위의 것들도.

  날짜가 쌓이고 해들리가 이반에게 먼저 산책을 권할 즈음이면 이미 그는 이반에게 무언가를 투영하고 있었다. 이반은 도움을 빙자한 첫 산책에서 말상대의 빳빳한 포기를 느꼈고 충분히 짐작했다. 조금 더 자유롭게 뛰고, 실수를 하고, 넘어지기도 하며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점에서 해들리는 다른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감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나무라는 어른조차 싫어하지 않아 꺼리기는커녕 반가워했다. 새벽에만 체감할 수 있는 미적지근한 공기를 기다렸다. 이반은 장래에 유로파의 연구원이 되겠노라 말할 때 다른 이유를 깨달았다. 직원과 승객, 어른과 아이의 모호한 공사에서 해들리 우드에게 이반은 여전히 마르티네스 씨였다. 적어도 이반만큼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라는 말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제가 마르티네스 씨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모양이지요.”


  유대감은 선뜻 다른 의미로 변화하고 있었다. 새벽녘의 말상대에서 보호자의 옷걸이로 가만히 선 이반은 발을 붙이고 차분히 서서 해들리를 본다. 갑갑한 셔츠 깃 단추를 채우는 것이 아닌 다른 특별함을 느꼈다. 넘어져도 좋다지만 무엇을 해야 넘어질 수 있는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같고 분명한데 굳이 목표할 만한 다른 것이 있는가. 어른들이 요구하는 아이 같음은 천진난만하고 단순하기 마련이었지만 해들리의 말씨에서 가라앉는 체감은 그것과 달랐다. 해들리가 가족과 지인에게 거리를 둔 현실감이 이반에게는 염려로 덧씌워진다.

  전등 밝기가 한 단계 낮춰진 복도에서 라운지의 창을 닦는 해들리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면 일찍 잘려나간 그루터기가 떠올랐다. 끌어안으면 손을 마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나이테가 적은 나무. 스스로를 바닷물에 담가둬 품종조차 짐작할 수 없는 결의 사람.

  이제 이반은 그에게 마음이 쓰이는 이유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승객이 아닌 어린 아이로 보고 있음을 안 뒤로 마르티네스 씨에 부여한 의미도 줄었다. 그러나 이반은 제 이유 모를 충동에 성실하기로 했다. 고요하고 단정한 눈빛 아래 뛰고 있는 박동이 있었다. 오시리스의 총성과 비명을 뒤로 하고 승선한 이후로 그는 해들리의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어도 2층부터 지하까지의 산책과 그들만의 시간을 지키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기대감과 안타까움은 이반에게 익숙해진 일이었고 도리어 이반 또한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영영 채워지지 않을 젖은 장작을 마르게 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뒤늦게 공학에 손에 댈 생각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 그가 마음껏 달리다 넘어지는 이반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만족한다면, 그의 빈 자리의 돌파구가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현재에도 실패를 만들어낼 무모함과 탐구심이 있었다. 가설은 무너질지 몰라도 실험에는 새로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게서 무엇을 보고 계시나요?”

 

   그는 새 옷을 벗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르게 팔을 끼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 물었다. 도리어 그 질문이 어른에게는 바람을 거둬내는 일이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원하는 바를 듣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호의를 거절할 줄 몰랐다.

  그럼에도 그가 이반을 온전한 사람으로 보기 위해 모든 것을 지워낼 수 있다고 말하면…….

  이반 마르티네스는 관조하기 위해 그의 방법을 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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