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렌치
2024. 12. 9.



 

신경쓰지 마. 잘할 수 있거든!

 

@readrawing 피크루

 

 끝이 갈라져 뻗친 재색의 인간 머리칼. 이족보행.

 딸막한 키, 용광로에서 자신의 몸 길이를 늘릴 수 있을 거라며 넉넉하게 입은 정장(당연히 실패다).

 팔꿈치 아래부터 건틀릿처럼 번쩍이며 빛나는 미다스의 손. 누렇고 뾰족한 이 중 진짜 금니가 하나. 

 두 다리는 발코가 늘 바깥으로 가게 땅을 디딘다.

 그는 고작 반신의 모습을 한 채 고정된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원래는 ‘이름값’을 했다는데…….

 

 머리색, 눈색: 재색, 짙은 청록색

 키, 몸무게: 145cm, 80kg

 나이: 101세

 코드네임: 파이프 렌치 / Pipe Wrench

 소속: 현장부

 

 세계선

 기술이 발전하여 연기가 가득 하늘을 메운 것이 무려 몇백 년 전. 한 나라의 왕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터전을 천공으로 올리겠다 선포한다. 연료를 태운 열기구로는 모자랐다. 1억에서 병사로 감소한 8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살 땅이 필요했다. 그들은 땅을 받치기 위해 황금을 연료로 삼는 기술 연구에 성공했고, 지면을 잘라 띄운다. 위로, 다시 위로. 그리고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돔 형태로 껍데기를 씌우고, 땅을 공중에 고정시킨다. 추락하지 않으려면 계속 연료를 태워야 했고, 성층권에 땅을 고정하기 위해 망치질 할 못 또한 필요했다. 국왕은 그 못을 새로운 신이라 부르고 숭배한다.

 

 소지품

  • 이상 측정기: ‘보기’ 편하기 위해 일단 선글라스로.
  • 진입기: 주는 대로 쓴다.
  • 개별 소지품: 빌려 쓰게 해줄 거지?
  • 무언가를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때로는 그의 과거를 설명한다.

 

 성격

 출발, 돌진! 안전불감증!
 얼렁뚱땅 미숙하지만 잘할 거라고요(본인 주장에 불과함).
 더디고 예민한 맥가이버칼; “뭐라고요? 얼른 알려줘요!”

 

 기타사항

 황금 파이프 렌치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진 천공도시의 위치를 고정하는 매개로 쓰였으며, 천공도시로 하늘을 띄우는 작업에 차출된 국민들의 결속력을 증진하기 위해 국왕이 그 고정된 매개를 신으로 삼고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다. 평소 이목구비라곤 없는 황금 파이프 렌치의 형태로 모셔져 많은 사람이 그의 아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신은 누구의 말에도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워낙 고루했던 탓에 속으로는 도시에 놀러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반쯤 인간의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하루에 5분이 고작이었다.

 렌치는 들어주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현장부에 지원했다. ‘잘하고 싶어! 잘 뛸 수 있어!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사실 체력상 적성은 사무부일 테다.

 

  시간선

 시간선을 뛰어넘은 뒤 다른 세상(렌치는 바깥 세상이라고 자주 불렀다)에 관심을 갖고, 특히 발전된 문물에 눈을 번뜩이곤 한다. 임무 시뮬레이션 교육에서 하이재킹이 이뤄지기 쉬운 도박장 함선에  탑승했다가 정신이 팔려 누군가가 끄집어내줘야 했다. 물론 홀로그램 프로그램이니 별 이상은 없었지만 주시대상. 

 

 신규 요원

  • 보통 렌치 등 줄여 부른다.
  • 다른 시간선과 이레귤러의 삶에 대한 이해가 더디고 여러 번 되물으며, 기억을 어려워한다.
  • 테스트에 매번 낙제하다가 겨우 문 닫고 들어온 실력.
  • 고장난 물건은 스스로 고치고 싶어한다. 내가 왕년에~.

 


 

 비밀설정

 사실 ‘신’이라기에는 지위를 빼고 나면 잘 만들어진 기계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현재는 인간과 다름없다. 어차피 시간선에서 퇴출된 이상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원래도 신으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신도, 국민,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부여받은 ‘지위’였음을 깨닫고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한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만큼 이레귤러로 쫓겨난 것에 자격지심을 품으며, 한편으로는 우주 진출에 대한 꿈을 터무니없이 들이댔던 자신의 과거가 실제로 실현되는 시간선이 있다는 게 쌉싸름하기도 하다.

 그는 많은 것을 드러내기 싫어하고, 그런데도 다른 자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맥락상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정의와 이치가 과연 타당하냐며 반론을 던진다.

 그래서 시간선에 거침없이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레귤러가 된 이유

 기이하리만치 정치가 왕권신수설에 고착되어 있었던 시간선. 국왕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신을 통치의 방패로 삼았다. 천공도시의 기반 연료인 황금을 지구에서 무한히 채광하느라 착취되었던 사람들마저 불행 속에서도 의지하기 위해 자신을 숭배하자, 거부감이 들었던 인조 신은 방도를 강구했다. 그는 인간이나 배수관의 모습으로 도심을 떠돌며 고뇌하는데, 신의 자리를 비우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이 지나 날짜가 바뀌는 5분이 고작. 사고한지 삼십삼 년째 되는 해에 국왕에게 찾아갔다.

 “내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도 황금을 빚을 수 있는 기술을 찾았다.” 그는 신이자 연금술사였다.

 왕이 말했다. “무작정 그런 방법을 시도하면 절대다수 사람들의 일자리를 잃게 합니다.”

 그는 다시 33년동안 사고하고, 고뇌한 뒤 대주교를 함께 불렀다.

 “누구든 일하지 않아도 배불리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 그는 신이자 농부를 자처한다.

 왕이 말했다. “숭배받도록 고정되었던 분이 과연 자리에서 떠나 위로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선사할 수 있을까요.”

 다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힘을 잃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잊고 있던 붉고 푸른 점 같은 행성들이 있었다.

 “나는 또다른 지구를 발견했다. 연기가 하늘을 메우지 않았던 때로 옮겨가기 위해 거대한 방주를 만들자. 우리의 힘으로 직접 땅을 띄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별을 찾아서.”

 기술이 천공도시 안으로 굽는 스팀펑크 시대에 우주 진출 가능성을 논했던 것이 시간선의 이치에 어긋났을까. 혹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한 국왕과 대주교가 신에게서 거대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까? 착취에 지쳐가던 정세로 제 위대한 계획에 협조해줄 이를 끌어들이는 것 또한 착취라는 것을 신이 간과했기 때문일까? 차라리 부유한 인간들에게 “더 좋은 곳으로 멀리 떠날 방법이 있다.” 라며 꼬드겼으면 눈속임이 쉬웠을 것을! 그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대신 노력가였지. 그는 거대한 열기구를 공들여 만들고, 최초로 국민에게 얼굴을 내보이고 우주 진출 계획을 발표하고자 마음 먹는다. 만국박람회 개최는 성공적이었다. 원조를 받기 위해 케케묵은 땅에서 살던 타국의 부유층도 잔뜩 초대했다. 신이 단상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다. 마이크를 쥔 순간 누군가 그를 밀어버린다.

 “당신은 더이상 신이 아닙니다.”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