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애비뉴의 굴뚝에는 낭비꾼들이 산다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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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IAL: 클라라는 절대 읽지 말 것!

 

 천장에 덧칠된 달이 뜬 밤에 발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요원의 자격은 진작 박탈되었겠지요. 나는 클래런스 매카시의 방황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그는 가끔 악몽을 꾸었습니다. 103번지의 외동으로서 그에게 안부를 물을 자격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나에게 원하는 답을 주시지 않았을 것을 압니다. 그렇게 나는 때로 그가 짓밟으며 방을 맴돈 카펫으로, 그가 손에 쥐는 찻잔으로 염탐꾼이 되었습니다. 매카시 부인은 하루에도 몇 통씩 신고를 위한 수화기를 들면서 밤에도 어디선가 반동분자가 나타날까 떨고 계셨어요. 나는 늘 클라라가 나를 언제 빅마더에게 고발할까 두려우면서도 나를 비롯한 동무—놀랍게도 ‘그’ 동무가 아닙니다—에 대한 공포를 깊이 새겨준 것에 감사했죠.

  그런데 언제 반동분자가 외계인이라는 걸 알았느냐고 물었을 때 클라라는 말했습니다. “그야, 내가 직접 목격했을 때지. 각을 맞춰 걷는 바, 반동분자 놈들이 우주선에서 내리는 모습 말이야.” 놀랍게도 우리의 동무들은 열을 맞추어 걷지 않습니다! 만일 동무와 함께 우주선에서 내릴 수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나 오래도록 대미합중국에 좌천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았다면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사실 누구보다도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고파 안달난 지구인이라는 것을요. 외계인이라곤 코빼기도 생각 않던 옛날로 돌아가고픈 인간이라는 것을요. 다만 그즈음 나는 클라라 매카시를 롄의 수하로 만드는 법에 대해 고민하느라 반쯤 미쳐 있었습니다. 

  괜찮아요. 그와 나는 여전히 퍼스트 스트리트에 있습니다. 2168년 지구의 맨해튼, 가십기사를 찍어내는 신문사의 한구석에는 매카시 전용석이 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그의 과거를 발굴해줄 겁니다. 그래야… 완벽하고, 완전하고, 안전한 집이 되어줄 수 있어요.

 

 

2

 

  클라라는 메릴보다 젊다. 그러나 그는 메릴보다 먼저 명을 다할 것이다. 메릴은 지구 정복을 위한 요원직 이수 과정 첫 시간에 인간의 습성을 배웠지만, 그 사실이 뱃속에 나앉은 것은 최근이다. 메릴은 미래를 원치 않았다. 메릴의 동료, 동무는 이미 곁에 있다. 한철 대미합중국 전역의 시설을 옮겨 다니며 동무를 기다리던 것과 다르게. 몇십 년이 지나고 그 동무가 떠나버리면 새로운 대체재를 찾아야 했다. 오늘은 그 고민을 미뤄두고, 집으로 돌아갈 연료부터 구해야겠지만.
   메릴은 클라라와 퍼스트 스트리트를 떠난 후 옛 대미합중국의 맨해튼에 자리 잡기 전까지 떠돌아다녔는데, 그 덕에 여행에 취미가 붙었다.

  “다, 당장 창문에 한 발을 쏘면 충분한가? 그도 아니면 머리에 스타킹을 뒤집어쓸까?”

  “아니에요……. 광선총은 비상용이고요. 살 거예요. 평범하게.”

  메릴이 짤랑거리는 동전과 지폐 몇 장을 꺼낸다. 그 동전 중 하나는 거멓게 찌꺼기가 달라붙은 흔적이 있었는데, 클라라가 매디슨 애비뉴의 매카시 전용석에 죽 늘어놓았던 동전들과도 같은 것이다. 자동차가 눈을 밟고 지나가면 축축하게 남는 흔적들처럼. “대, 대미합중국의 부티크에서 UFO의 연료를 판다고?” 메릴이 조금 웃었다. “놀랍게도 사실이에요. 버니나 미키도 파셨고요.” 

  103번지의 가족은 약 164년을 거슬러 매디슨 애비뉴에 돌아왔다. 그들이 도착한 맨해튼의 땅은 13각 도형의 연속이 아닌 직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토스트나 시리얼 대신 근사한 요리를 고안하는 인공지능 미니 로봇도 없다. 그날의 소식은 싸구려 종이로 된 조간신문으로 받아보며, 로터리 다이얼식 텔레비전이 유행을 실어나르는 소식통이던 시절(기원후 2168년 지구의 방송사는 형식이든 내용이든 결단코 단일하지 않았다). 메릴은 클라라에게 줄 것이 있다며 우주선에 클라라를 앉혔고, 조종석의 절반을 차지하는 깔때기에 월석을 집어넣은 뒤 레버를 당겼었다. 클라라는 머나먼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렘과 두려움에 물들어 도도새처럼 겅중겅중 뛰었다.

  메릴은 클라라의 어깨를 잡고 부티크의 유리창 앞으로 떠밀었다. 붉은 리본이 묶인 선물 상자들과 함께 털 코트를 입은 마네킹이 비치되어 있었다. 클라라는 어릴 적 부티크 앞에서 둥근 리스 장식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희미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음모론은 들어보신 적 있어요?” 클라라가 ‘알다마다’, 라고 대답할 즈음 메릴이 말을 이었다.

  “그거 진짜예요. 가끔 동무, 아니 롄 족이 상대의 자리를 꿰찰 때 퍼트리던 연막이거든요. 우리는 그럴 때 지구인의 시간을 훔쳐 쓴다고 표현했어요. 그리고 어떤 과학자는 그 표현에서 착안해 정말로 시간을 훔칠 방법을 고안했죠.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재밌어 보이는데! 그렇게 된 거였군. 자네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물건은 시간여행의 연료다. 오래될수록 좋아요.”

  “흐, 흐흐. 꼭 꿈을 꾸는 것 같구만. 설마 매, 매디슨 애비뉴에 올 수 있게 될 줄도 몰랐고!” 클라라는 메릴에게 생명체 또한 연료로 쓸 수 있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대신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메릴의 팔짱을 끼고 끌어당겼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메릴은 두 팔을 벌리지 않고도 균형을 바로잡았다. 그의 두 번째 지팡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오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는 클라라의 바람에 헌신적으로 임한 결과라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빅마더가 인간의 손에서 태어난 피조물이고 외계인이 실존한다는 것이 알려진 때부터 뛸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성실한 비밀 조수를 자처할수록 클라라 매카시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외계인의 지위에 대단한 명예가 깃든 것처럼 군다. 잠도 같은 시간에 자고, 여전히 지구식 식사를 즐기는데, 심지어는 처음부터 매카시 부인을 집어삼킬 생각이 없었대도 마찬가지였다. 화성의 퍼스트 스트리트에 버려지고 나서 처음으로 나눈 대화는 이랬다: “으하하, 메리. 역시 그거 농담이었지? 자네가 외계인이었다면 날 1순위로 없애버렸을 테니까 말이야, 으핫핫핫…….” “…….” “아, 아닌가?” “노, 농담은 아닌데요…….”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안 죽어요. 안 죽여요…….”

  그도 그런 게 매카시는 정부의 도청에서 벗어나고 싶어 음모론을 설파하던 사람이다. 몇십 년의 거짓된 삶이 송두리째 인정받는 일(‘부정당했다’라는 표현은 부적합하다)이 괜찮을 사람이 어디 있나. 메릴은 진심으로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지구인에게 설득력 있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적절히 그간 학습한 생명체 중 조금 오싹하고 덜 순종적이지만 호의적인 면모를 꺼내어 진실로 꾸몄다. 그는 메릴 클레이턴보다 쉽게 투정을 부리는 동시에, 위트를 아는 신체 강탈자였다.
“좋아, 고, 고맙네, 메리. 정말로 놀라운 크리스마스 선물이구만!”

  “마음에 드세요?”

  “기절할 지경이야! 자네보다 훨씬 작던 꼬맹이가 된 것 같군. 부티크에 온 건… 골동품을 얻기 위해서였나?”

  “비행체의 연료를 보충할 필요도 있지만요. 중요한 건 매디슨 애비뉴가 클라라의 고향이고, 1964년이나 2168년이나 내일은 크리스마스라는 거죠. 클라라, 원한다면 1964년처럼 보낼 수도 있을걸요. 모처럼이니 구경도 하고, 트리 장식을 더 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횡설수설한 말에 클라라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퍼스트 스트리트에 오기 전에는 특별한 것 없이, 쿠키가 담긴 접시를 두고 등불에 비추어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메릴은 짙은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12월 첫날에 하루를 꼬박 들여 트리를 장식하고 케이크 레시피를 골랐다. 지금껏 단 한 해도 빠짐없이 그랬던 사람들처럼(물론 케이크는 메릴을 두려워하는 밀드레드가 굽는다).

  부티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부산스러웠다. 메릴은 천장까지 닿을 높이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지나쳐 골동품이 놓인 진열대에 갔다. 양모 베레모, 백합과 글라디올러스 조화가 꽂힌 화병, 벨벳 소재의 띠나 목욕 가운, 아이가 타는 목마……. 청동으로 만들어진 빅마더의 손이 든 스노 글로브를 들여다보았다. 뒤집자 눈가루가 팔랑거리며 빛났다. “이런 건 아무렴 못 쓰겠지만. 새삼 무섭죠?” 심미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장식을 내려놓는 소리에, 정신없이 주변을 구경하던 클라라가 고개를 들었다.

  “뭐, 뭐라고?” 그는 어색한 자세로 나사르 본주와 닮은 눈알 모양 막대사탕을 들고 있었다. 메릴은 웃음을 터트리며 사람들을 가로질렀다. 나이 육십 먹은 노인이 번쩍이는 초콜릿 공장에 처음 와 본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마음에 드시는 게 있었어요?”

  “메리… 이런 건 어떤가? 눈알 사탕인데, 자, 장식으로 달 수도 있을 걸!”

  “좋아요. 저… 크리스마스를 싫어하시는 건 아니었군요? 원래는 조용히 보내셨다길래.” 

  “서, 설마. 서먹한 것뿐이야. 게다가 그땐 케이크나 칠면조를 구울 필요도 없었어!” 클라라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어깨를 감쌌다. “자네 덕에 지금이 외롭지 않은 거지.” 메릴이 클라라가 든 사탕을 몇 개 더 꺼냈다. “사실은 옛날에도 시끄럽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싶으셨어요?”

  “…….”

  “선물도 받고 싶었고요?”

  “선물은……. 흐흐, 가, 가끔은 너무 솔직한 것도 좋지 않대도. 과거의 비극은 중요하지 않다네!”

  메릴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표정을 짓는 클라라를 보고 있자니 기묘한 쾌감이 들면서도 불편한 기분이 닥쳤다. 연구자인 동무에게서 몇 없는 에너지 전환 기계를 훔쳐 우주선에 싣고, 찰리가 살아있었을 과거에 데려다주었는데도 부족했다. 그는 클라라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속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화성인이었다.

  메릴은 클라라의 손을 꽉 쥐고 엽서가 놓인 진열대로 다가갔다. 빨간색, 녹색의 바탕에 산타나 트리, 눈사람 따위가 그려진 카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메릴은 새것 같은 카드 묶음을 통째로 덥석 집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새빨간 자루에 비질을 하듯 쓸어담았다. “갈 곳이 생각났어요. 원래도 가보고 싶었지만.”

 

 

데뷔! 산타클로스

 

  1964년의 크리스마스, 번화가가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의 2층집 창가에는 눈송이가 내려앉는다. 선잠을 자는 아이를 뒤로하고 굴뚝으로 들어온 붉은 도둑들이 자루에 물건을 옮겨담는다. 내부가 어둑어둑한 탓에 개중 키가 큰 쪽이 등을 돌리다 팔꿈치를 문에 박는데, 리스가 카펫 위로 떨어져 잘게 떨었다.

  크리스마스의 가정집에 침입한 도둑 콤비는 초범이었다. 한 사람은 잎새가 다 떨어진 고목나무처럼 앙상하게 선 채 총을 들고, 목격자와 비슷한 키의 경찰이 그를 보조하는데, 들고 있는 거라면 썰매에 실어야 할 붉은 자루에 광선총 한 자루뿐이었다. 커다란 주머니 바깥으로 비집고 나오는 물건들이란 모조리 값어치가 쌌다. 자그만 곰인형과 초콜릿은 챙기고, 체리가 올라간 컵케이크는 한 입씩 베어문 뒤 식탁에 다시 내려놓는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두르는 전구나 지팡이 오너먼트, 뒤꿈치에 천을 덧대 꿰맨 양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들은 오와 열을 맞추어 우향우한 뒤 양말을 주웠다.

  그리고 그 양말에 새로운 것을 집어넣는다. 값어치가 매겨진 물건이 아니라… 고작 엽서 두 장.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 두 세트에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빌려줘요’라는 코멘트를 붙여서. 각진 모서리를 감싼 양말의 재봉선이 툭 튀어나온다.

  그 기척에 침대의 주인이 스르륵 눈꺼풀을 든다. 메릴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잠입하기 위해 벽에 스며들거나 커튼이 되는 일 따위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클라라는 신난 눈치로 광선총을 고쳐 쥐었다.

  “꼬,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메릴이 손바닥으로 총구를 덮었다. “정말로 쏘시면 안 돼요, 산타클로스. 신기루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네 이, 이런 데선 눈치가 없구만. 다 연막이었다고! 메… 아니, 루돌프.”

  “누, 누구세요…?” 검고 파리한 인상의 아이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어리둥절한 눈길을 가늘게 뜬다. “유감스럽게도 들켜버렸지만 사, 산타클로스라네.”

  “서, 선생님께서는 올해가 처음이라서! 미안해요, 하지만 선물은 채워뒀어요.”

  “이상하다. 코가 바, 반짝이지 않는데…….”

  “이, 이 친구가 좀 별종이지 뭔가.”

  “어… 별종이요?”

  “진짜 그렇긴 해요.”

 

 

4

 

  커다란 깔때기에 빅마더의 손이 든 스노 글로브와 크리스마스 볼 한 상자를 털자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계기판이 작동했다. 메릴은 허리를 숙여 클라라의 안전벨트를 매주고, 조종석으로 향했다. UFO 뒤편에는 클라라의 옛 물건들을 실은 붉은 자루가 실려 있었다. 클라라는 숨을 들이키고 지팡이를 눕혔다.

  “그, 그래서 자네는 뭐라고 썼나?”

  “직접 말하긴 조금 부끄러운데… 아마도 조금 있으면 알게 되실지도요. 뇌가 녹았다가 엉겨붙지 않는 이상은.”

  “…메리, 아주, 아주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하지만 일리 있는 상상이라고 생각하셨죠? 죄송해요, 농담이에요.”

  메릴은 레버를 당기고 단추를 오른쪽으로 민다. 엔진 출력이 서서히 올라간다. 클라라의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해간다.

  “이상적인 친우가 되고 싶다고 썼어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세요. 괴짜로 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꼬마 클라라는 그런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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