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하나의 추위
2023. 1. 5.

 

 “한 대만 줘 봐.”

 “담배도 피우셨었어요?”

 “예전에 지저분한 회식에 아등바등 끼느라 잠깐…….” 맵시가 담배를 입에 물고 투정을 부린다. “불.”

 마라도는 추웠다. 맵시는 몇 시간동안 잠수를 거듭하다가 보트 위에 드러누웠다. 망령의 부름에 이끌렸대도 이만큼 심장이 번뜩이는 때는 처음이었다. 바닷속으로 끌려간 요원들. 그들을 믿고 마라도로 가자고 말하는 동료들. 맵시는 꿋꿋이 우겨 구조 작업을 강행했다. 결국 흔적 하나 찾지 못하고 선박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가호는 그런 맵시가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 맵시는 그의 코트에 축축한 팔을 끼우며 살갑게 말했다. “너 예전에 인기 많았지. 남들 잘 챙겨주고 세심하잖아. 옷이 깔끔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빌려도 주고…” 가호는 기껍게 받으면서도, 어깨를 콩 부딪히며 장난을 친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른 걸요?”

 맵시도 옆구리를 찌르듯 되돌려준다. “가진 게 몸뚱이 하나라, 할 수 있어서 한 거야. 진짜로 너처럼 그 사람들이 걱정돼서 뛰어든 건 아닐 거다.”

 “이미 요원님 안에 동료를 위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실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맵시는 단숨에 아니라고 말했다. 그 고래가 평범하다는 전제 하에, 사람과 고래의 목숨을 저울질한다면 그는 아마 결론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권선이 들고 있던 물건으로 소어에게 된통 복수하고, 바다를 조율하고 나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맵시는 고래가 사람들을 삼켰더라도 똑같이 바다를 수색할 생각이다.

 꼭 불사르는 것 같았다.

 사람을 위하는 마음인지, 무력한 상황에 놓인 자신을 부정하고픈 마음이었는지.

 

 방에 빔 프로젝터를 들여놓은 후 맵시는 자주 고흐를 꼬드겼다. 두 사람의 영화 취향은 영 딴판이었다. 맵시가 《프란시스 하》를 고르면 고흐는 《루카》를 영화 리스트에 올려두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래도 괜찮았다. 하루는 영화관에서 시간대에 맞는 걸 아무거나 보자고 제안한 걸 생각하면, 그가 유독 로맨스 영화를 잘 아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맵시는 고흐와 스크린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판타지는 곧 사랑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매체 안에서 그려지는 로맨스의 클리셰는 절대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플롯이다. 상상 안에서 존재하던 힘을 현실로 끌어오면서 운명에 매료되는 주인공은 희망에 부풀어오르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를 비슷하게 달성한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다른 주인공을 필연적으로 사랑하며, 판타지의 경우 그 사랑의 대상이 확장된다. 그래서 맵시는 예상보다 빠르게 고흐의 취향에 스며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고양이의 보은》을 봤다. 평범한 고등학생 하루는 트럭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다. 고양이 왕은 자신의 아들을 구해준 것에 감사의 표시를 하며, 하루를 신붓감으로 맞이하고자 자신의 왕국으로 끌어들인다. 하루는 새로운 세상에 매료되었다가도, 영원을 맹세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탓에 괴로워한다. 이 소녀를 고양이 사무소의 일원들이 돕는다. 마침내 왕자가 하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갈등이 절정에 다다라 해결의 지점으로 내려올 때, 하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선 계단을 오르며 말한다. “난 잘못하지 않았어. 고양이를 구한 것도, 모든 일이 꼬인 것도 모두 소중한 나의 시간이었어.”

 점차 하루가 고양이의 탈을 벗는 장면에서, 맵시는 고흐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나초를 먹고 있었다. 지긋한 시선에 의아한 눈이 마주쳤다. 고흐가 목소리를 낮춰 작게 물었다.

 “왜요?”

 “아무것도. 마저 봐.”

 고흐는 어린 동생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가 지겨워졌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는 그 의무가 반드시 보답 받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의라고 생각하기에도 모호한, 가족이기에 당연했던 길. 맵시는 그가 하루에게 동화되어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맵시라면 보답을 받을 상황에 다다르게끔 멱살을 잡고 키를 돌리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이었으므로.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노이즈가 낀 채 하루가 어린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컷이 흘러갈 때 맵시는 물었다. “어땠어?” 그건 하루가 앞으로도 쭉 행복할 수 있을지 묻는 것과도 같았다. 정석은 ‘앞으로도 힘든 일이 일어나겠지만, 잘 견뎌낼 것 같아요.’였고, 논외는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겠죠.’일 테다.

 고흐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군. 설명하기 어려워. 워낙 까마득해서 말이야.”

 맵시는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와닿는 대사는 있었다. 키키가 마녀 수행을 위해 준비하던 날, 아버지는 다정하게 키키를 살피며 말한다. “잘 안 되면 돌아와도 된단다.” 같이 본 사람은 대부분 잊을 만도 하지만, 어쩐지 맵시의 기억에서는 지우기 어려웠다. MIS에 들어올 때에는 자신 없이도 잘 살 어르신의 마음에 어떻게든 상처를 내고픈 마음 뿐이었는데, 듣고 나니 그런 말 한마디면 많은 게 풀렸을 것만 같아서였다. 여유가 생긴 지금 와서 설명하자니 고흐가 지겨워져서 도려냈던 것과 같은 이치가 될까 봐 부끄럽고, 꼭 치졸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창피해졌다. 가시를 잘못 삼킨 것처럼 칼칼하고 불편했다.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죽어도 싫었다. 초라함을 입안에 삼켜물기 위해 뻔뻔하게 고개를 치들고 웃었다.

 “그래, 맞다. 내 딴에는 복수했어. 꼬박꼬박 돈 보내주는 사람이 죽어버리면 어떨까 하고. 그래서 올 때 평범하게 사망 처리로 부탁했거든.”

 맵시는 이제 기억났다는 것처럼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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