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저울
2021. 12. 5.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신이 아닙니다. 인어와 인간이 칭송했던 아틸라스란 진주를 흘리지 못하는 인어면서 태고의 섬을 돌보는 수호자인 동시에 나에게는 한낱 인간이나 다름없어요. 분노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인간이라 한들 언제나 내 목을 틀어쥘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왜 그리 칭하였느냐 묻는다면 한낱 인간조차도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을 내 명줄을 손쉽게 꺼트릴 수 있기 때문이라 답할게요.

 당신이 처음 몸을 일으킨 날, 숨을 틀어막던 중압감을 잊지 못합니다. 허락된 자만이 고개를 들고 당신을 대면할 수 있었지요. 그날부로 나는 객실 안에만 있으면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별 탈 없이 조용히 호주에 가고 싶었던 소망 같은 것들을 모두 게워내야 했습니다. 한동안 책을 읽고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어 당신에게 화가 났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육지와 바다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 무슨 수로든 죽을 수 있고, 홀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게. 어디서든 나는 부와 명예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을 빼두면 약자나 다름없다는 것도.

 그래서 아틸라스, 당신이 꼭 나와 같은 땅 위에 사는 사람인 것만 같았어요.

 권능을 잃은 신조차 마땅히 숭배하는 것이 어린 양의 운명이라지만 당신은 지금껏 나를 살려두고 눈물을 흘렸잖아요. 역사를 새로이 쓰고 신화를 세운 것을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요. 당신을 빚은 빵과 포도주가 살결을 따라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껴본 적도 있겠죠.

 당신이 인어와 인간을 동시에 잃었듯 나한텐 재처럼 사라진 사람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오랫동안 흔적을 좇아도 단서를 찾지 못한지 ■ 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죠. 내가 무얼 더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때 누가 호주로 가는 표를 주면서 그곳에도 그 애가 없으면 정말로 추적을 그만두라고 했고요. 난 그 말에 따르기로 했는데…….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 거라 예상하고 기대는 안 했어요. 그런데 그런 여정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힘겨웠어요.

 당신도 거기에 한 수 보탰지요. 아무도 없던 신전에서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서서 당신에게 물었던 말을 기억하나요. 인어는 자신의 자취를 신기루처럼 감추고 사라지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느냐고요. 답을 받지 못해 다른 인어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웃더군요……. 그래요, 별반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는 당신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해도 우리는 비슷한 외로움을 안고 살아요.

 태고의 섬에서 보냈던 시간은 끊임없이 나와 남을 의심하는 과정이었어요. 내가 찾는 그 애가 과연 사람인지, 인어인지. 어느 정보를 걸러야 하고 과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

 오래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나는 결론은 어린아이와도 같았습니다. 이곳은 그레이엄 군의 말대로, 혹은 당신이 바랐듯 핏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섬이에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가져다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괴로움을 나눠들 수는 있는 이들이더군요. 그래서 여기서라면 사람을 찾지 못하더라도 원하는 것 하나 정도는 바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곳의 일을 모두 잊어도 좋으니 내가 조용히 눈을 감을 집 정도는 직접 고르고 싶어요. 그 권리를 무정히 앗아가지 마십시오. 아틸라스. 그리 한다면 당신은 나의 신이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의 공간 안에서 친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 말고요, 조용히 해요.

 …….

 ……내가 입으로 말했나요.

 …….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에요. 여기에 방해꾼이 하나 있거든요. 당신도 내가 광증에 걸린 사람 같겠지만, 그런 눈으로 내려다보지 마세요. 원래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

 

 하여튼. 인어를 사랑하는 인간을 대가로 요구한다면 바다에 내던질 사람도 골라두었는데, 그랬다가는 내가 물고기 밥이 되겠죠. 그건 바라지 않아요.

 그러니 진실로 듣고 있다면 알려주도록 해요. 당신에게 필요한 자가 순결한 신도인지, 짐을 나눠들 친구인지. 바닷속에 잠긴 아틀란티스의 시민들인지, 아니면 우리인지.

 이곳에는 당신이 입을 떼면 받아 섬길 사람들이 널려 있어요.

 

 

myoskin